- 우주의 끝(The End of the Universe)
시한부 진단을 받은 주인공에게 의사가 묻는다. 당신의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남길 거냐고.
뻔한 말 밖에 떠오르지 않던 중 갑자기 떠오른 한 마디.
‘걸어라’.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대답들을 보여준다.
- 유통기한(Expiration Date)
동네 마트에서 일하는 지숙이 유통 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폐기하지 않고 어린 남매에게 준 일로
마트에 민원이 들어오고, 친한 동료가 해고 위기에 놓인다. 마트 규정 아래에 휘둘리는 건 언제나 노동자뿐.
갑과 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어떠한 유연함도 허락되지 않는다. 그 씁쓸한 현실 속에서 지숙은 동료에게
해고를 선언한 점장에게 “내 순서는 언제냐”고 묻는다. 자신의 처지를 알 수 없는, 벼랑 끝 상황에서
사실을 고백하고야 마는 지숙은 그날 밤 어린 남매를 만나고 집으로 향한다.
영화를 보고 나면 유통 기한이 상품에 해당하는 것인지 노동자의 삶에 해당하는 것인지,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.
노동문제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개인의 내적 갈등을 잘 엮어낸 작품.
- 뒤로 걷기(Walking Backwards)
을왕리 해변에서 배달을 하는 서른두 살 시헌은 곧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. 식당 이모들의 축하를 받던 어느 날
처음 보는 일본인이 찾아와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다. 서른인 료타는 시헌이 어릴 적 도망간 엄마가 일본에서
새로 꾸린 가족의 아들이다. 처음 만난 형제는 시헌의 동네 친구 예진과 함께 엄마의 패물이 묻혀 있는 차이나타운 옛집을 찾아간다.
떠나보낸 가족의 숨겨진 삶을 되짚는 건 방성준 감독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.
단편 <목련에 대하여>(2017)에선 아들이 아버지의 영혼을, <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>(2018)에선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시(詩)를 만나며 살아갈 온기를 얻는다.
<뒤로 걷기>는 시헌이 외면해 온 유년기를 돌아보는 로드무비다. 인천에서 영화를 찍어 온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운다.